2018.5.7. 아내와 둘이 집을 나서
파주 적성면 소재 감악산 가까운 코스를 산행후 귀가 길에
인근의 구읍리 소재 "영국군 설마리전투 추모공원"에 들려 보았다
공원은 약 3,000평 규모로 당시 영국군 모습의 7개의 동상과
참전용사 914명의 이름을 새긴 ‘추모의 벽’(Image wall)이 있다.
6·25전쟁 참전 영연방 4개국 중 최초로 조성되었다고 하는데
‘추모의 벽"의 사진판에는 참전 전부터 전쟁, 귀국까지의 과정이 담아 있으며
둘러 보는 내내 그당시 당사자는 물론 남편과 아들을 보낸 가족들이
얼마나 애타고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 진다.
나는 천천히 공원을 둘러보면서
일어나지 말아야 할 비극이 먼 남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인 데도
지금은 이런 사실 조차 잊혀지고 현실에 안타까움이 앞선다.
비단 이곳에 와 본 사람중에 나 하나 뿐이겠는가 ?
이름도 생소한 머나 먼 이국땅에서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그들을 잊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리고 우리네의 비극 6.25 의 교훈을 잊지 말았으면...
설마리전투는 1951년 4월 22일부터 25일까지 나흘간
영국 글로스터(Gloster)대대가 파상공세에 맞서 처절하게 싸웠다.
6·25전쟁사에서 가장 성공적으로 실시된 고립방어의 대표적인 전례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중공군 3만여 명의 인해전술에 맞서 외부 지원이 끊긴 상황에서도
투항 하지 않고 결전을 치렀다. 마지막까지 전투를 치른
750명의 부대원 중 622명이 전사하거나 부상을 당했다.
이들의 희생 때문에 중공군은 당초 계획보다 3일 이상 발이 묶였고
그 사이 한국군과 유엔군은 수도권 북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면서 서울을 사수할 수 있었다.
이 전투의 공로로 부대는 ‘영광스러운 글로스터’로 칭송 받았고
미국 트루먼 대통령 부대훈장과 영국 최고 훈장을 수훈했다.
당시 참전자들은 제2차 세계대전 경험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전투가 더 끔찍했다고 회상했다.
설마리전투에 참천한 "안소니 파라 호커리" 대위는 전공을 세우고도 포로가 되어
1953년 8월 31일 판문점으로 귀환할 때까지
2년 4개월 동안 무려 일곱 번이나 탈출을 시도하며
군인으로서의 본분과 명예를 지켰다.
휴전 협정 이후 귀국하여 이후에는 대장으로 북유럽 연합군사령관을 지냈다.
위 사진은 소총수로 참천했던 "로날드 그린"이 포로가 되었다가 1953. 판문점으로 송환된후
귀국하여 항구에서 아내와 4살딘 딸과 부두에서 재회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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